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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살이 Zoom In/생활 | 경제

갈비 뜯은 후 냉면의 상큼 시원함을 모르는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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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끼리나 지인들과의 모임에서 흔하게 술한잔을 곁들여 먹을 수 있는 것이 바로 '갈비' 입니다.

많은 회식자리들이 삼겹살을 비롯해서 이 '갈비'집으로 정해지는 것은 그리 어색한 일이 아닙니다. 돼지갈비 또는 소갈비는 으례히 어느 식당이고 없으면 안되는 메뉴가 바로 '냉면' 입니다.

뜨거운 숯불에 지글지글 고기를 구워가면서 먹다가 어느정도 포만감이 느껴질 때면 '맛'을 즐기는 분들은 '냉면'을 항상 시켜서 먹으면서 마무리를 합니다. 저 또한 그렇고, 가족들 및 지인들도 대부분은 그렇습니다. 기름진 고기를 먹던 끝에 시원하고 얼음이 띄워진 냉면의 새콤하면서 상큼한 육수로 마무리를 하면서 느끼는 그 맛의 만족감이란 오랜 더위 끝에 찾은 오아시스의 물 한모금처럼 아주 특별한 배가된 느낌을 전해주기에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유독 저희 어머니는 냉면을 드시지 않습니다.
고깃집에서 뿐만 아니라 '냉면' 자체를 드시지 않죠. 드시라고 해도 완강히 거부합니다. 냉면을 먹고서 체증이 있던 터라면 일정시간이 지나면 다시 드시기 마련인데 어머니에겐 그것과는 다른 냉면과 멀어지는 계기가 된 30여년전 일화가 있습니다.

사연은 제가 서너살박이 시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무더운 여름. 개울가에서 물놀이를 자주 즐기던 어린 제가 개도 안걸린다는 한여름 감기에 걸려 고열에 고통받고 구토에 시달리다가 이내 심상치 않은 심한 병세에 어머니와 아버지는 그 시골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큰 병원을 찾았습니다. 오전부터 서둘러 출발했고, 진찰을 받고 처방을 받기까지 한참을 기다리고 점심때를 훌쩍 넘겨버린 시간.

모든 진료를 마치고 병원문을 나오면서 어머니는 아이가 다른 이상은 없고 감기로 몇일 약을 먹고 진정시키면 좋아질거라는 의사선생님의 소견을 듣고 가슴을 쓸어내리며, 오랫만의 시골에서의 도시구경이라 안도감과 함께 그제서야 주변의 풍경들이 눈에 들어오고 여유가 생겼습니다. 땀에 범벅이된 몸과 허기진 배를 채우려 아버지에게 말을 건넵니다.

" 애도 괜찮다고 하고, 배가 고파 죽겠어요. 밥좀 먹어요. 맛있는 걸로.... "
" 그래, 뭐가 좋을까나... "
" 오랜만의 외출인데, 맛있는거 먹어요. "
" 그래, 어디보자. 더운데 시원한 냉면 어때? "
" 냉면이 뭐에요? 맛있는 밥 먹어요. 고기 어때요? "
" 더운데 무슨 고기? 냉면 먹자. "

그렇게 냉면집으로 들어간 어머니와 아버지. 주문한 물냉면이 얼음 동동 띄운 채 나왔을테지만, 주먹만한 양의 쫄깃한 면발이 어머니의 굶주리고 지친 허기를 달래줄 양이 안되었을 테고, 어머니의 말을 빌리자면 "시금 털털한 그 맛에 질긴 면발, 그리고 조막만한양 "에 실망을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더욱이 한그릇 뚝딱 먹어치우는 아버지를 보면서 더 드시라고 면발을 죄다 덜어주고 나니 정작 먹은 것도 없이 냉면집을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랫만에 도시로 나가는 길이기에 시골집 할머니가 말한 필요한 물건들을 사러 여기저기 돌아다녔다는데요. 아침일찍 복중 더위에 출발해서 때를 놓친 점심과 속을 채우지 못한 실망스런 점심식사로의 냉면, 그리고 이어진 물건구입을 위한 행보가 사람의 '진'을 빼기에 충분했나 봅니다.

그러한 일이 있은 후, 제가 크고 한참이 지난 후에 서야 어머니가 그날 이후로 냉면을 줄곧 드시지 않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30여년전 제가 몹시 아픈 한여름의 일화를 어머님을 통해서 전해 들으면서 한가지 생각을 해 보았었습니다.

당시에 '냉면'을 먹으면서 실망하고 주린 배를 채우지 못한 아쉬움과 실망감에 지금껏 수십년동안 냉면이란 음식을 먹지 않아 왔고 갈비를 뜯은 후 냉면의 시원 상큼한 진미를 모르는 어머니를 보면서 만약 당시에 아버지와 함께 순대국이나 고기 등의 기타 굶주린 배를 포만감으로 채워줄 어떤 음식을 드셨더라면 지금까지 아마도 그 음식은 기억과 추억과 함께 아주 맛있게 찾는 음식이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요. 못살았던 당시 가정형편도 아니고 당시에 어머니가 드시고 싶던 고기를 드시고, 더불어 "걱정 많이 했지.." 라는 멘트와 함께 시원한 냉면도 선사했다면 아마 지금쯤 어머니는 당시를 회고하면서 고기먹은 후의 냉면을 누구보다도 먼저 찾았을 것입니다.

아내를 바라보는, 그리고 남편을 바라보는 시선에 있어서 서로의 입장에서 힘들었을 무엇인가를 배려하는 마음으로 세심한 주의를 기울일 필요성이 있다는 것을 누구나 깨달을 것입니다. 몇일전 가족들과의 모임에서 고기를 먹은 후 모두가 물냉면을 먹으면서 마무리하는 자리에서 혼자서 칼국수를 드시던 어머니를 보면서, 그리고 그간 몇차례 강제로도 드시게 하려고도 시도해 보았지만 완강히 거부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통해서 느꼈던 상대방에 대한 '배려', 더욱이 평생을 함께할 배우자에 대한 '배려'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게 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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