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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살이 Zoom In/생활 | 경제

결혼식에 초대받지 못한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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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토요일 늦잠을 자고 티비를 보면서 다른 날 처럼 그렇게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오후 두시쯤에 전화 한통이 걸려왔다.

친한 학교 선배로부터의 전화이다.

졸업한지 한참이 지나다 보니 대학교 시절의 지인들은 별일 없으면 일년에 년말 망년회를 통해서 한번 볼까 말까 그렇게 각자가 맡은 생활속에서 열심히들 살아가고 있다. 한해 두해 지날 수록 전화도 뜸해진다.

그 선배로부터 받은 전화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 어디야? "
" 집인데요. 오랜만이에요. 선배 "
" 뭐.. 뭐라구?? 너 결혼식 안 왔어?? "
" 네?? 뭐라구요? 겨... 결혼식이라뇨? "
" 야! 임마. 오늘 00 결혼식 아냐? "
" 그래요? 근데 왜 난 연락도 없었지? 청첩장도 안왔던걸요? "
" 그래? 다른 놈들이 전화 안했냐? "
" 안왔는데요? "

" 글쎄, 이상하긴하다. 다른 놈들이 왜 죄다 안보이지? "
" 00 왜 연락을 안했데?? 우리 학번 하나도 안보여요? 선배? "
" 웅, 없어. 글구 학교 사람들 별로 안보인다. 나하고 00 하고, 00 하고 둘뿐이야. "
" 이상하다. 예식은 몇시부터인데요? "
" 두시반 "
" 일단 알았어요. 제가 그 놈한테 전화 해볼게요."

다소 황당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나름 친한 대학교 동기놈인데, 아무 말없이 결혼식을 할 놈이 아닌데 너무도 궁금하고 나는 이때까지 그 선배가 잘 못 알고 간 것이라 생각했다. 이내 먼저 가까운 대학 동기 몇놈들 한테 전화를 걸어 보았다. 모두 모른단다. 바빠서 연락도 안했고 지난 연말 모임 이후로 서로 연락이 없었단다.

이상하고 황당해서 그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첫번째 전화는 정신이 없어서 인지 받지 않아 십분후에 다시거니 통화를 할 수 있었다.

" 야 ! 00 선배한테 전화 받았는데, 너 오늘 결혼식 맞아? "
" 어... 어.. 그.. 그게.. 그렇게 됬어."
" 뭐.. 뭐라구~!!!! 근데 왜 연락도 없었어? 너 이럴 수 있어? "
" 다른 뜻은 없고, 그게 너무 멀리 해서 이쪽 가까운 사람한테만 연락했어 "

" 야.. 그게 아니지. 동기놈들 모두 불러서 축하해 주어야 되는게 당연한 거지. 어떻게 이럴수가 있냐? "
" 미안해. 경기도 어렵고 또 다들 바쁘잖아. "
" 아휴, 답답해. 야 결혼식장 어디야? 지금 갈게. "
" 아니야 좀있다가 식 시작해. 글고 끝나면 바로 신혼여행가. "
" 글쎄, 입 닥치고 어디냐니깐. "
" 아.. 그게 여기 마산이야. "

" 머.. 머라구 !! 마산~! 야 임마, 지금 친구들 전화해서 내려가도 저녁이나 도착하겠다 임마. "
" 으.. 응. 멀기도 하고, 차비에 부조금에 부담주기 싫어서. 글고 바쁘잖아. "
" 야! 너 신혼여행 다녀오면 무조건 전화해 알았어? "
" 응. 미안, 그냥 내 생각에 그렇게 결정했어. 친구들 부담 안 주려고, 경기도 어렵고 물가도 오르고 해서.."

" 헛소리 한다.. 이건 아니라고 봅니다요. 임마. "
" 암튼, 좀 있다가 식 시작하니까. 나중에 통화 하자. 나중에 집들이 때 부르면 되자나.."
" 그건 그거고 결혼식은 별개야. 차원이 틀린거야. 너 그럼 신랑 친구들도 없을거 아냐? "
" 몇명, 조촐하게 부담없이 준비하느라."
" 알았어. 어여 들어가봐, 결혼 축하한다. 글고 나중에 여행에서 오면 일정 맞춰 알았지? "
" 응. 땡큐~ "

이렇게 통화를 하고 끊었다. 참으로 황당한 경우가 아닐 수 없다. 평소 이놈이 속이 좀 깊은 놈인데 오르는 물가에 지방인 마산에서 더더구나 식을 올리게 되었으니 수도권에 있는 친구놈들에게 부담주기 싫었나 보다. 더더구나 이 녀석 집이 좀 어려워서 그동안 힘들었는데, 난데 없이 연락도 없이 결혼식을 치뤄 버렸다.

전화를 끊고나서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깊은 생각에 잠시 빠져서 결론낸 것은 나중에 이 친구 보면 반갑게 축하해 주면 될 것을. 이러한 상황이 그만의 독단은 아닐터. 속 깊은 놈이 친구들 위한답시고 조금 오버를 한 듯 하다. 참 그 친구 답다.

경기가 어렵고 물가가 오르니 친구놈이 결혼식에 초대도 하지 않았다. 나름 나하고 학창시절에 아주 절친하게 우정을 쌓은 놈인데, 먹고 사는 민생고에 헐떡이는 서민이 졸업후에 마주하고 놀 시간이 몇일 이나 될텐가. 서로 가끔 연락만 하고 있었는데 왠지 미안한 마음과 가슴 한켠이 멍 든것 처럼 아리기도 하다. 허전하기도 하고...

그 친구 다른 놈들보더 꿋꿋하게 집안 어려워도 잘 버티던 놈이였는데, 그 넘쳐나는 배려심과 어려운 경기속에서 결국 친구들에게 폐가 갈까봐 멀리서 하는 결혼식에 초대를 하지 않았다. 결국 나는 결혼식에 초대 받지 못한 일인이 되어 버렸다. 경기가 어렵다 보니 별 경우를 다 당하는 구나.. 기분이 아직 까지도 씁쓸하다.

" 00야, 결혼 진심으로 축하하고, 신혼여행 다녀오면 술한잔 꼭 하자. 집들이도 하고, 알았지 임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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